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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70년 무렵에는 커피를 마시는 일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사회적 관습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어요.

    이슬람교 지도자와 금욕파 수도사들이

    커피 반대론을 제기하며 통탄의 목소리를

    드높인 때는 바로 그즈음이었습니다.

     

    이들은 커피하우스에 사람들이 늘

    붐비고, 사원은 텅 비었다고 탄식했죠.

    설교자들은 도 여기에 동참했어요.

    선술집에 가는 것보다 커피 하우스에

    가는 것이 더 큰 죄악이라고 말이죠.

     

    지배자들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입니다.

    커피에 관한 조사를 착수해요.

    여기서 다시 한번 케케묵은 노쟁이 

    촉발됩니다.

     

    커피에 비호의적인 이슬람교 법률

    고문이 등장한다는 것이 예전과 달라요.

     

    광신도들은 마호메트가 커피를 마시기는 

    커녕 존재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에 

    마호메트 추종자들이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해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원두를 숯불로

    볶은 다음 가루로 빻아야 하는데요.

    코란에서는 숯불을 불결한 식재료로 

    여겨 엄격히 금하고 있다는 주장도

    커피 반대론에 한몫합니다.

     

    법률 고문은 광신도들의 손을 들어줍니다.

     

    커피가 법적으로 금지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금지령을 준수하기보다는

    어기는 쪽이 더 큰 존경을 받는 상황이었죠.

    사람들은 공공장소가 아닌 사적인 장소에서 

    변함없이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러나 1580년경, 종교에서 문제제기가 

    계속됩니다. 

     

    아무 라드 3세가 커피를 와인과 

    같은 부류로 분류하여 마호메트 

    법에 따라 커피를 금한다는 선포 해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조용히 웃으며

    비밀스러운 불복종을 이어갑니다.

     

    커피 금지령이 종교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사안임을 깨닫고 있었어요.

    행정 관리들은 커피 유행을 탄압하려는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아요.

     

    돈을 받고, 암암리에 커피를 판매를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오스만튀르크에서는 문을 닫고

    커피를 팔거나 뒷방에서 커피를 

    파는 커피 밀매점이 많아졌습니다.

     

    차라리 커피하우스를 허용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즐겨 마시는데 한몫합니다.

     

    새로 임명된 이슬람교 법률 고문은

    전임자만큼 강경하지 않았어요.

    현명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커피와 숯을 달리 분류해야 한고,

    커피가 율법에 의해 금기시된 

    음료가 아니라 공포했어요.

     

    커피가 다시 부활하는 순간입니다.

     

    이슬람교 신자, 설교자, 변호사와

    신임 법률 고문이 본보기로 

    커피를 마셨어요.

    커피는 다시 한번 콘스탄티노플

    전역으로 퍼져 나가게 됩니다.

     

    이후 커피하우스는 각 수상들에게

    매력적인 세입 원천이 되었어요.

    따라서 더 이상 탄압은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무 라드 4세 시절

    수상이었던 쿠프릴리는 칸디아와

    전쟁 중에 정치적인 명분을 들어

    커피하우스를 폐쇄할 것을 명해요.

     

    커피하우스가 대중에게 선동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한 겁니다.

    쿠프릴리는 커피 금지령에 

    강경한 입장이었습니다.

     

    첫 번째 위반 때에는 매질을 했어요.

    두 번째 위반 때에는 가죽 포대에

    넣어 보스포루스 해협에 던져버렸죠.

     

    커피 하우스는 탄압하지만 

    코란에서 금기시한 와인을 판매하는

    선술집은 계속 허용했습니다.

    와인은 대중을 위협적인 존재로

    만들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이 당시에도 역시 법으로써

    사람들을 억제하기는 어렸웠어요.

    온 세상이 욕망을 가릴지라도 억압된

    욕망은 언제 가는 사람들 눈에 보인다.

    정의롭지 못한 법은 20세기보다

    이 시기에 더 힘이 없었어요.

     

    햄릿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인간성은 변하지 않는다.

    이성을 잃고 야수로 돌변할 때도

    있지만 커피 때문에 이성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커피는 우리의 분별력을

    더욱 날카롭게 만든다.

     

    프랑스 동양학자 길랑은 이렇게

    말합니다.

     

    커피는 사회적 존재로 태어난 

    인간들을 더욱 온전하게 결합시킨다.

    우리 마음이 구름과 안개로 

    흐릿하지 않을 때 터져 나오는 

    주장이 더욱 진실된 법이고,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커피 금지령 위반자들을 중벌로

    다스렸음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티노플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법을 무시했다.

     

    시장에는 커피 행상들이 등장해요.

    이들은 큰 구리 용기를 불로 지펴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면 근처

    커피 가게로 가면 되었습니다.

     

    커피 가케에서는 누구라도 환영했죠.

     

    이후 커피 하우스가 더 이상은 

    정치적으로 위협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쿠프릴리는 자신이 

    공포한 커피 금지령을 스스로 

    폐지하고 자유롭게 마실 것을 

    허용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탄압 당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음료가 

    또 있을까요?

    와인은 조금 다릅니다.

     

    커피는 와인과는 정반대

    성향을 보였어요.

    사람들을 각성 시켜

    문화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토론하게 했어요.

     

    사회 문제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전문가

    들에 다양한 의견을 나눌 

    장소를 제공해 더 발전된

    문화를 만들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렇기에 독재자들은

    커피 음료가 눈에 가시였어요.

    그러나 결국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승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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