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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전파
이집트를 정복한 오스만투르크
셀림 1세가 콘스탄티노플에
처음 커피를 들여왔어요.
1530년경에는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전달됩니다.
1532년 경에는 알레포로
커피가 전해집니다.
시리아와 알레포로
커피가 전달될 때 아무런
저항이 없었어요.
장미, 구원의 문
다마스쿠스에서는 몇몇
커피하우스가 명성을
얻기 시작했는데,
'장미' 카페나 '구원의 문'
카페가 유명했습니다.
커피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1523년 카이로의 한 의사는
커피가 계속 확산된다면
의사를 찾는 환자가 줄어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동료 의사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요.
"삼삼 오오 무리를 지어 마시는
커피 음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심하고 마시도록 우리 의사들이
허용하는 분위기이자만 이 음료는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요.
우리 판단력에 영향을 주고
건강에도 매우 유해합니다.
이를 허용해야 합니까?
아니면 금해야 합니까?"
글의 말미에 편견을 배제한
자신의 소견이라며
커피는 불법이라는 점을
조심스럽게 덧붙였어요.
커피가 불법입니다.
대다수 의사들은 동조하지 않아요.
보초학에서 이미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커피를 두고 소모적인 논쟁을
일으킨다고 생각했습니다.
카이로 이하시 문제 제기는
수그러들었어요.
의사들은 가만히 있었다.
커피 대중화를 막기 위해 의사들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성직자들은 달랐습니다.
키페는 예배당보다 더 큰 안식을
주는 공간으로 점점 자리 잡고 있었죠.
강경파 성직자들은 이러한 현실
받아들이 힘들었어요.
커피에 대한 반감이 일시적으로
올랐다가 1534년 다시 한번
표출됩니다.
카이로 한 사원에서 격노한
설교자가 예배 참석한 사람들에게
커피는 불법적인 음료라고 주장해요.
커피를 마시는 이들은 진정한
이슬람교도가 아니라고
감정적으로 선동하기 시작해요.
대규모 예배 참석자들이 격노하며
사원에서 몰려나와 제일 먼저
눈에 띈 카페로 쳐들어 갑니다.
카페에서 커피를 즐기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마시는 커피
커피 주전자와 접시를 불태우고
카페 손님들을 닥치는 대로 괴롭히죠.
이 사건을 계기로 커피를 둘러싼
논쟁이 촉발되었습니다.
커피는 마호메트 법에 위배는 측과
금지해야 한다는 측으로 나뉘게 됩니다.
솔로몬
이렇게 혼란한 가운데 솔로몬이라는
대법관이 나서 박학다식한 의사들을
소집해 자문을 구하게 되는데요.
다시 한번 칼자루를 쥐게 됩니다.
의사들은 강경한 주장을 합니다.
"이미 선배 의사들이 답을
제시했고, 지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 분별없는 열정과
설교자들의 경솔함을 따져
봐야 할 때"라고 답합니다.
이 대답을 들은 현명한
대법관은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커피를 대접했고, 자신도 몇 모금
맛을 보았습니다.
이 대법관이 있었기에
대립하던 사람들은 다시 하나가
됐었어요.
커피는 이전보다 더욱 인정받게 됩니다.
커피 하우스가 유행하다.
커피가 콘스탄티노플에 들어온
과정 역시 메카와 카이로에 들어왔던
과정과 상당히 비슷해요.
커피를 둘러싼 비슷한 분란이 있었죠.
비이성적인 종교적 미신이 있었으며,
정치적인 혐오와 권력자들의 어리석은
훼방이 있었습니다.
모든 시련을 뛰어넘은 커피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새로운 음료로서
인정받고 인기를 얻습니다.
아랍 커피 하우스는 콘스탄티 노블에서
가장 발달하게 됩니다.
커피가 콘스탄티노플에 알려진 때는
1517년이에요.
1554년 셀림 1세 아들인 술레이만
황제 통치 시절 다마스쿠스 출신
셈시와 알레포출신 헤켄이
타크타칼라 지역에 콘스탄티노플
최초의 커피 하우스를 개점했습니다.
당시 커피 하우스는 신세계 같았어요.
아주 깔끔한 소파를 제공했어요.
사교와 자유 토론의 장을 제공했습니다.
커피 한 잔 가격이 약 1센트여서
누구나 커피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오스만 튀르크
오스만 튀르크 커피 하우스를
카베카네스라 불렀어요.
선술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여인숙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커피하우스 인기는 날로 높아져요.
외관도 화려해졌습니다.
라운지를 갖추고 고급 카펫으로
장식했으며 다양한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커피아우스가 등장했어요.
'지혜 학교'로 불렸던 커피하우스를
찾는 이들은 다양했습니다.
교역상과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장 들은 물론이고, 젊은 신임
법관, 복직과 임명을 기다리는 지방
하급법관, 전문가, 궁정 관리,
오만한 관리, 콘스탄티 노플
유명한 귀족들이 커피하우스를 찾았죠.
커피는 처음에 탄압을 당했어요.
하지만 그 누구도 커피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사람들은 커피숍에
모였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커피숍은 유행하고 있는 것처럼
커피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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