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루이 14세가 선물로 받은

    커피나무 종자에서 자란

    커피 묘목은 앤틸리스 제도로 날아가

    두 번 실패를 거치고 성공하게 됩니다.

     

    이 성공에는 숨은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마르티니크 보병 대장으로 근무한

    가브리엘 마티외 드 클리외라는 

    노르망디 출신 젋은 해군 장교 있었죠.

     

    개인적인 용무로 프랑스 가야 했던 클리외는

    마르티니크스로 돌아올 때 커피를 

    들여올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파리에서 커피 묘목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죠.

    군중 의사였던 시라크 도움으로 

    묘목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클리외 자서전을 보면 지체 높은 

    여성이 중간에서 시라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결과라고 전해져요.

     

    확보한 커피묘목은 마르티니크스로

    출발할 때까지 프랑스 서부 로슈포르에

    보관됩니다.

     

    로슈포르 병참지 장교였던 배공이 

    보관을 맡았어요.

    크리외가 마르티니크에 도착한 정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해요.

     

    1720년이라는 기록도 있고, 

    1723년이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이 있는 이유는 

    클리외가 커피나무 묘목을 얻기 위해

    프랑스와 마르티니크에 두 번이나

    방문했다는 사실 때문이에요.

     

    자드뎅은 말합니다.

    크로의 첫 번째 여행 때에는 묘목이

    죽어버렸지만, 두 번째에는 

    여행할 때에는 프랑스를 떠나기

    직전 커피 종자를 심는 데 성공을 했고,

    마르티니크에 도착할 때까지 

    커피 묘목이 살아 있었다고 전해요.

     

    클리외가 배 위에서 부족한 식수를

    배급받으면서도 아끼지 않고 

    커피나무에 물을 주었기 때문에

    커피 묘목이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물이 없으면 죽습니다.

    오랜 시간 바다를 건너가려면

    물이 필요해요.

    클리외는 그 부족한 물을 

    커피나무에게 양보했던 겁니다.

     

    클리외가 1774년에 보낸 기록을 

    보면 첫 번째 여행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클리외가 마르티니크에 묘목을

    한 그루 들여왔는지 세 그루

    들여 왔는지 의견이 많았어요.

     

    그러나 믿을 수 있는 문예연보

    보내 기록을 보면 한그루가 확실해요.

     

    클리외는 1723년 프랑스 낭트에서

    승선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귀한 묘목을 우리 상자 안에

    심었는데요. 

    햇빛 흡수율을 높여 흐린 날에도 

    상자 속 온도를 높게 유지하기 위해서죠.

     

    여행객 중에는 크리 외를 시샘한 

    나머지 그 계획을 망치고자 온갖

    책략을 구미는 이가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그 비겁한 시도는 모두

    실행할 수 없었어요.

     

    크리 외는 문예연보에 보낸 편지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긴 여정 동안 이 예민한 식물에게 

    쏟아야 했던 나의 끝없는 정성에 대해

    이제 와서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당시에 내가 조국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시기한 나머지 누군가가 제 

    커피 묘목을 강탈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문에 고생했다는 이야기는 

    다시 꺼내는 것도 의미가 없을 겁니다.

     

    클리외가 타고 있던 배는 상선이었죠.

    승객과 선원 모두에게 위험천만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어요.

    튀니지 수도에서는 해적선을 

    만나 간신히 탈출했습니다.

     

    배를 전멸시킬 듯한 사나운 폭풍우를

    만나기도 했어요.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에는 여느 때보다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식수였어요.

     

    식수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죠.

    남은 여정 도안 버티기 위해서는 

    승객들에게 식수를 배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클로의 기록에는

    "여정이 한 달 여 남은 상황에서

    물이 부족했다. 배급받은 물이 부족한

    가운데 내 희망과 기쁨의 원천인

    커피 묘목까지 돌봐야 했다.

     

    가냘픈 나뭇가지가 성장을 멈춘 듯할 때

    물을 더 많이 줬다."

    이 같은 희생정신은 클리외 명성을

    놓였어요. 훗날 여러 작가들이 

    클리 외에 기록을 통해 찬미했습니다.

     

    마르티니크에 도착한 클리외는 

    커피 묘목을 을 프레쇠르의 사원으로

    옮겨 심었어요.

    레이날은 이곳에서 엄청난 속도로

    커피 종자 번식이 이루어졌다고 

    기록합니다.

     

    첫 수확은 1726년에 이루어졌어요.

    클리외는 마르티니크스에 도착한 뒤

    상황을 이렇게 기록해요.

     

    집에 도착한 후, 우선 묘목이

    성장하는데 최적인 장소를 골라

    정성스럽게 옮겨 심었어요.

    누군가 어린 나무를 훔쳐갈까

    노침초사 했어요.

     

    결국 커피나무 묘목 주위에 

    가시덤불을 설치해 묘목이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보호대

    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귀한 식물을 지키는 과정에서

    위기 순간도 있었지만

    그만큼 내가 애중중지 키웠기

    때문에 나에게 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고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1727년에 큰 지진이 납니다.

     

    커피 재배에 성공함으로써 나는 더욱

    큰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커피 종자를 2파운드가량 확보해

    커피 재배에 힘쓸 것 같은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

     

    첫 번째 수확 결과는 상당히 좋았다.

    두 번째 수확 이후에는 재배 면적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었다. 

     

    그런데 유독 이곳에서 커피 재배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이유는 

    이 지역 토착민들의 자원이자

    경쟁생활 원천이었던 코코아나무가

    2년 전 대홍수 때 사나운 폭우로

    전멸했기 때문이다.

    코코아 재배지는 전부 물에 잠겼고

    토착민들은 남은 땅을 재빨리 

    커피 종자를 뿌렸다.

     

    모든 일이 놀라울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커피 종자가 산토도밍고와

    과들루프 이웃의 여러 섬으로

    전파되었어요.

     

    이들 섬에서도 커피는 성공적으로

    재배되고 있어요.

     

    이후 많은 나라로 커피가 전파되고

    경쟁적 발전이 크게 이바지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은 커피나무 묘목은

    서인도 제도와 멕시코만 

    인접 지역에 부를 안겨 주었어요.

     

    이 모든 것은 클르외에 박애주의가 

    만들어낸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응형